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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의 찬란한 사랑, 90년대 댄스 대세론의 굳히기

moment Mobile 2011. 2. 16. 22:50




80년대 소방차, 김완선이라는 선구자들에 의해서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던

한국 댄스 음악은 홍서범이라는 전위적인 아티스트의 랩핑에 자극받아, 서태지와 아이들을 통해 80년대 디스코 사운드와 작별을 고했다. 




이후 잼, 노이즈로 이어지는 오늘날 군무의 원형이 자리잡기 시작했으며, 김건모를 필두로 레게 및 하우스풍의 누구나 애인과 눈을 맞추고 댄스를 나눌 수 있는 음악이 한때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듀스가 흑인 음악의 진정한 신호탐을 알리며 댄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무의 떨어지는 댄스 완성도, 듀스의 댄스가 랩핑 사이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라는 한계.. 서태지 아이들의 아티스트로의 방향 선회는 진정한 댄스 지향적 아이돌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으며, 이런 대중의 목마름 속에서 나타난 90년대 중반의 대세론은 REF였다.


Rave Effect, 레이브 효과.. 아 나비효과 보다 강렬했던 이들의 소방차부터 내려오는 한국 댄스의 원형과 레이브의 결합은 20세기 밀레니엄의 세기말적 광풍에 무관했던 당대 10대들에게 스타의 진정한 개념을 맛보게 해주었다.


장국영을 연상하게 했던 이성욱의 미소년 이미지와 성대연의 샤프하면서 조금 노는 듯한 동네 잘나가는 오빠의 컨셉, 그리고 옆집 오빠의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짱인 박철우(헤드뱅잉 기네스북 소유자).


이들의 조합은 환상 자체였으며, 당대 10대들이 가지고 있던 X세대 20대 오빠들에 대한 환상은 이들에 의해 다양하게 변주되고 합쳐지면서 그네들의 욕망을 만족시켜주었다.


고요속의 외침이 노래했던 "내 맘속에 고요함을 깨뜨리고 널 두고 난 부르네"는 동양 철학적인 정중동의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예전부터 음악속의 복잡계의 원칙을 설파했던 REF는 홍재선의 탁월한 창작은 일본에서 과거 히트했던 사운드의 재창작 프로듀싱에 힘입어 이별공식, 상심으로 이어지는 한앨범 세곡 히트라는 대박을 터트린다. 아, 이 얼마나 전무한 기록인가.. 지금이야 2NE1처럼 더블 타이틀곡으로 복귀하기도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엄청난 패러다임의 전복이었다. 


물론 댄스는 과감하게 풍차돌리기, 해드뱅잉와 같은 고난이도 댄스를 대중에게 소개했으며, 기존 군무와 다른 그들의 절도있는 움직임은 하나 하나가 당대 10대들에게 바이블이 되어 눈으로 안되면 몸소 익혀라라는 교육의 참된 메시지를 널리 알려 세상을 이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2집 백투더 블랙으로 REF는 돌아왔다. 과감한 인트로 나레이션이 돋보였던 찬란한 사랑은 가요에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접목시킬 수 있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전달했고, 그들의 강렬했던 군무는 더욱 파워풀해졌으며, 과감하게 상의를 깠던 패션 그리고 검은 자켓에 보이런던, 페레 브랜드 로고를 박으면서 협찬의 진정성을 대중들에게 알리며, 기업 친화형 뮤직계의 비즈니스 모델의 교두보를 쌓았다.


그리고 2집때부터 식스팩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성욱은 '마음속으로 걸어가'에서 오늘날 택연으로 이어지는 상체 탈의 퍼포먼스를 나인투나인으로 은글 복근을 보여주는 팬서비스까지 제공했다.


그리고 2.5집에서 가을의 기억은 "콜라같은 사람"과 같은 대위법을 시적 은유를 표현에 담으면서 아티스트적 변화를 서서히 시작하기 시작했다.


한국 댄스의 레이브 신화를 이어가던 REF는 시대적 조류에 따라 3집부터 Ruff eazy flavar로 그룹명을 바꾸고, 심연을 통해 힙합에 도전했다. 이성욱의 팀내 입지의 감소와 성대현, 박철우의 파워가 강해지면서 생긴 음악적 변화가 아닌가 싶다. 3집은 HOT의 성장으로 대박을 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힙합의 끓는 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킹뮤직 소속의 REF는 4집에서 윤일상 파워를 끌어와 귀머거리 하늘을 발표했으며, 차트에서 한차례 1위의 영광을 토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 뽕짝품의 네버엔딩스토리를 타이틀곡으로 먼저 제시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팬들의 분열도 있지만, 그들은 선방했고 당대 사운드로 좀처럼 내기 힘든 일렉트로니카 댄스곡 one side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렇게 REF는 어느덧 중견가수가 되었고, 30대의 나이로 더이상 댄스를 이어가기 힘들었다. 그들이 창조했던 90년 댄스 대세론은 2000년 세기말적 분위기와 함께 Y2K와 같은 락과 HOT의 열맞춰, 아이야와 같은 고딕 사운드에 밀려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또한 이세상에 모든 여자란 세라복 일본 애니 주인공이 전부였던 당대 10대남에게 핑클, SES가 나오면서 춤의 롤모델로서 REF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물론 킹뮤직의 새로운 대항마 김범수가 열심히 드라마 ost로 성공기로를 선 것도 약간의 요인이리라


그들은 콘서트 음악 플러스 이성욱의 보컬이 돋보이는 포레버 위드 유 곡이 담긴 포레버 위드유 앨범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이성욱은 솔로 데뷔를 준비했으며, 디지털 느낌이 가득했던 이성욱닷컴을 만들어 앨범 작업에 들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중간에 이용민과 상심앨범 작사였던가 작곡이였던가 분쟁이 벌어져 한동안 이용민의 솔로 프로젝트 그레이 팬들과 싸우기도 했다.


근데 왜 이용민은 무리수를 들어 자신의 네임을 그레이로 했을까.


 

어쨌든 이성욱은 명동 일식집, 부평 피씨방을 운영하며 재기를 도모했으며, 사랑은 어려워라는 앨범으로 멤버들과 결합하여 팬들과 다시 만남을 도모했지만 홍재선의 일본 사운드 재창작 프로듀싱이 빠진 상황에서 이들의 물리적 결합은 말 그대로 그네들이 원했던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이렇게 REF는 대중에게 멀어졌고, 이성욱은 크리스탈 드라마 출연, 2007년 너에게 가고 있어를 발표했지만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혼했고, 성대현의 예능으로 다시 대중에게 환기되기도 했다.


REF가 이룩한 댄스의 진기원은 한국 댄스의 새로운 음악적 전환기였으며, 인트로 군무+댄스+간주 랩 형식은 한국 댄스 음악 형식미의 원형이자, 현재에도 지속적으로 변형되어 재창조되고 있다.


현재 그들의 대한 오마쥬는 비스트, 제아와 같은 후계자를 통해 계승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들을 존경하는 후배 가수들이 지속적인 존경을 바칠 것으로 예상된다.